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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소개, 아메리카 드림의 재해석과 영화 속 이야기, 느낀 점

by 프리우지 2025. 4. 17.

 

 

 

< 영화 소개>

 

🎬 미나리 (Minari, 2020)

  • 장르: 드라마
  • 국가: 미국
  • 감독: 리 아이작 정 (Lee Isaac Chung)
  • 주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조
  • 제작사: 플랜 B 엔터테인먼트
  • 개봉일: 2021년 3월 3일
  • 시간: 115분
  • 등급: 12세 관람가 
  • 시청: 웨이브, 애플 TV, 왓챠 등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줄거리 

어쩌면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이방인이었던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1980년대 미국 아칸소. 한국에서 이민 온 제이콥과 모니카, 그리고 두 아이 데이빗과 앤은, 메마른 땅 한가운데 작은 트레일러에 몸을 싣고 섰다. 모든 것은 불확실했고, 아무것도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제이콥은 믿었다. 자신의 손으로 땅을 일구고, 한국 채소를 심어 부자가 되겠다고. 미국 땅 한복판에서도, 누군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모니카는 지쳐가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삶, 끝없이 이어지는 생계 걱정, 그리고 아픈 아들 데이빗을 바라보며, 이 모든 선택이 옳았는지 매일 되묻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적응했다. 어설픈 영어와 낯선 풍경 속에서도 작은 웃음을 찾으며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가 한국에서 건너왔다. 낡은 트렁크 하나 들고, 화투와 고춧가루를 품고, 엉뚱하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채. 순자는 가족 안에서 또 다른 균열과 충돌을 만들어냈지만, 서서히, 아주 서서히, 데이빗과의 유대 안에서 이 가족이 잃어버린 웃음과 온기를 불러냈다.

모든 것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와중에도, 미나리처럼,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다.

 

 

 

 

 

아메리카 드림의 재해석과 영화 속 이야기.

 

어쩌면 영화는,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숨을 죽이고 스크린을 바라보던 우리의 마음 한가운데로, 조심스럽고 단단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첫 번째, 뿌리를 내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

<미나리>는 이민자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어디에 있든, 어떤 땅이든, 인간은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는 본능을. 미나리는 물이 많은 곳을 스스로 찾아간다. 누구의 손길 없이도, 알아서 자라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번성한다. 가족도 그랬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삶 속에서도

어디선가, 어떻게든 버텨야만 했던 것이다.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 그것이 이 이야기의 가장 깊은 곳에 흐르고 있었다.

 

두 번째, 성공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

제이콥은 말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하지만 성공을 좇을수록, 가족은 점점 더 무너져갔다. 꿈을 이루는 것과 사랑을 지키는 것, 그 두 갈래 길 앞에서, 그는 방황했다. 영화는 조용히 묻는다. 과연 성공이란 무엇인가. 돈을 버는 것이 전부인가. 아니면, 함께 웃고 함께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 우리가 바라보는 성공의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낡고 부서지기 쉬운 것이 아니었을까.

 

세 번째, 가족이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다른 문화, 할머니와 부모, 아이들이 부딪히고, 오해하고, 상처를 주면서도 결국 남는 것은 하나였다. ‘함께 있음’ 그 자체. 혈연만으로 엮인 가족이 아니라, 서로를 품어주고, 서로를 안아주며 살아내는 사람들. 그것이 진짜 가족이라는 걸, 이 영화는 작은 몸짓으로, 천천히 알려주었다.

 

네 번째, 보통 사람들의 위대함.

이 영화에는 영웅도, 악당도 없다. 그저 매일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뿐이다. 거창한 사건도 없다. 하지만 그 평범함 안에서, 삶은 눈부시게 빛난다. 지극히 평범한 하루하루,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숭고할 수 있는지를. <미나리>는 소리 없이, 하지만 아주 깊게 우리에게 전하고 있었다.

 

 

윤여정배우. '순자'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 한가운데에 ‘순자’가 있었다. 순자는 낯설다. 미국 이민 서사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노인, 여성, 이방인. 모든 면에서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러나 순자는 그런 경계를 스스로 넘어선다. 기이하고 자유로우며, 누구의 기준에도 맞추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 어색한 말투로, 엉뚱한 행동으로, 그러나 누구보다 깊은 마음으로 가족을 품는다. 윤여정 배우가 순자를 연기했다는 것은, 단순히 뛰어난 연기를 넘어선 일이었다. 그녀는 한국 이민자 1세대 여성들의 얼굴을 대변했다. 억척스럽거나 희생적이기만 한 전형을 넘어, 살아 있는 한 사람, 한 존재로서. 자신의 언어를 잃지 않으면서도, 낯선 풍경 속에 스며드는 법을 아는 존재로서. 윤여정은 정체성의 경계를 넘어섰다. 아시아 여성, 고령 배우, 이름 없는 이방인. 그 모든 이름을 품고, 오스카 트로피를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녀가 연기한 ‘순자’라는 존재가 바로 ‘살아남는 사랑’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순자는 미나리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자라난다. 그늘에서도, 습지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가족도, 그렇게 살아남는다. 윤여정은 그 ‘살아남음’의 에너지를, 서늘하면서도 따뜻하게, 주름진 미소와 굽은 손길로 조용히 전해주었다.

 

 

<미나리>는 말하고 있었다.

“미국은 너를 환영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는, 어떤 땅에서도 물을 찾아낼 수 있어.”

 

그리고 그 말은 희망을 가장한 환상이 아니라, 버티고 살아내는 진짜 삶에 대한 선언이었다. 윤여정은 그 이야기의 중심에서, 크게 외치지 않고, 거창하게 꾸미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잃든, 사랑은 살아남는다.”

 

그 작은 몸짓, 그 깊은 주름 속에 깃든 사랑의 힘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느낀 점

영화를 보고 마치 오래도록 젖어 있던 물속에서 막 걸어 나온 사람처럼, 마음 한가운데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 이 가족은 무엇을 얻었는가.

농장은 불탔고, 돈은 사라졌고, 꿈은 희미해졌다. 그런데도 그들은 살아 있었다. 그곳에 남아 있었다. 손을 놓지 않고, 서로를 지켜보며.

나는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삶이란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아니라, 넘어지고 일어서는 것의 반복이 아닐까.

<미나리>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 작고 조용한 생존의 자리. 그곳에서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 미나리가 그러하듯, 물이 많든 적든, 햇빛이 들든 말든,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뿌리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성공’이라는 단어의 허울을 벗겨내고, 그 밑에 숨은 진짜 삶의 결을 보았다.그리고 나도 모르게, 조금 더 단단해지고 싶어졌다.

 

미나리는 특별한 식물이 아니다. 화려한 꽃도 없고, 탐스러운 열매도 없다. 하지만 그 생명력은 놀랍다. 물이 고인 자리라면 어디서든 뿌리를 내리고, 누가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자란다. 심지어 다른 식물들이 시들어가는 자리에서도, 미나리는 조용히 살아남는다. <미나리> 속 가족은 미나리와 닮았다. 누군가 돌봐주지 않아도, 기대던 기반이 무너져도, 스스로 길을 찾고, 스스로 자란다. 누구도 화려하게 기억하지 않는 이야기지만, 그들은 사랑했고, 버텼고, 살아냈다. 그래서 미나리는 희망의 은유가 아니다. 미나리는 ‘삶 그 자체’다. 무너져도 다시 살아가는 힘,

상처 입어도 다시 웃을 수 있는 힘. 내 마음 한구석에서도, 영화가 끝난 후에도, 아주 조용히 미나리 한 포기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넘어진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고, 슬픔에 잠겨서도 끝끝내 일어나는 그 힘이, 나를 조금 더 앞으로 밀어주는 것 같았다.

미나리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겠다고.